Business Inside

거래의 조건

El Dorado 2009. 5. 9. 14:46
처음으로 내가 주도가 되어, 큰 규모의 딜을 해보았다.
어찌보면 누구나 하게 되는 부동산 거래이긴 하지만,
결국 내가 가진 전재산을 훨씬 초과하는 규모의 딜이라는 점에서 무시하긴 어렵다.

생선가게에서 갈치 값을 몇 백원 깎으려 흥정하는 것도 딜이고,
집을 사고 팔면서 몇 백 혹은 몇 천을 절약하는 것도 딜이다.

금번 거래의 특징은 사고 싶은 쪽이나 팔고 싶은 쪽이나 꽤나 마음이 급하다는 점이다.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히 빨리 처분하고 싶은 심정이고,
수요자 입장에서도 이정도의 인테리어와 위치적 장점을 보유한 집은
단지 내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테니 마음이 급하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500만원 깎아 달라는 그들의 요청을 덥썩 물어버렸다.
사실 이런 정도의 거래 규모에서 500만원을 두고 벌이는 줄다리기는
인내심이 강한 쪽이 승자가 된다.
500만원 때문에 딜이 무산될리는 없는 것이다.
결국 느긋한 마음을 갖고 버티면 500만원을 더 손에 쥘 수 있었을 테지만,
혹시나 모르는 딜 무산 가능성에 대한 Risk를 받아들이기 힘든
특수 사정으로 인해 결국 쉽게 수락해 버렸다.
어차피 1/2 분배를 하면 한달 월급도 안되는 돈이 아닌가...

중개사 테이블에 앉아서 세부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들의 요구 조건은 계속 되었다.
어찌보면 사소한 조건들 하나하나를 들으며, 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어차피 계약서 앞에 두고 벌이는 협상은 판이 깨질 리스크가 별로 없다.
그러기에 그 쪽에서도 살살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계약서의 방향이 흘러가길 바랬고,
빨리 계약을 마무리 짓고 싶은 양쪽의 부동산 관계자들도 나이어린 나를 슬슬 설득하고 있었다.

이건 딜이다.
살짝 양보해 주면 끝나는 일이지만,
금전적 손해를 떠나 딜에서 계속 물러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2시간 여에 걸친 마라톤 협상이 이어졌다.
협상 과정에서 내미는 그들의 요구를 하나하나의 Fact와 논리를 통해 난 거부하였다.
중요한 포인트마다 그들의 눈을 보며 심리적 상태를 읽어보았고,
거래의 흐름에 따라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밀고 당기는 협상의 묘미를 느껴보기도 하였다.
그들은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상, 그쪽이 몇명이든, 그들의 나이가 얼마나 많던 중요한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카드와 그들이 가진 카드를 잘 읽고,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파악해서
나의 최종 카드를 제시하는 것...그게 딜의 전부다. 
 
결국 나보다 적어도 20살은 많은 어른들 5명을 상대로 한 게임이었지만,
나의 요구 조건을 모두 관철시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도장 찍을 무렵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한 표정의 거래 상대방을 보면서
최소한 이번 딜의 승자는 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몇 억짜리 부동산 거래를 하면서 500만원 깎아주고
몇 백을 다시 끌어왔다고 성공적인 딜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작은 딜에서 승리하는 법을 배워야 나중에 정말 사업적 거래를 할 때에도 승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은 승리라도 의미가 없진 않다고 여기는 것 뿐이다.

어쩌면 살아가는 과정은 결국 딜의 연속이고, 그 과정에서의 작은 승리들이 모일 때
성공이라는 이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비즈니스 차원에서의 얘기다.

아쉬웠던 점은 비즈니스도 결국 사람 간의 거래라는 점에서
비즈니스의 승리와 좋은 관계를 동시에 형성하는 것은 참 쉽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딜은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유리한 협상 조건을 끌어낼 수록 그만큼 상대방의 협상 조건은 불리해진다.
아무리 쿨한 사람이라도 심리적 마지노선에 가까운 계약을 체결하면 불쾌해진다.
그런 거래를 이끌어낸 거래 상대방이 달가울리 없다.

내가 향후 전개하게 될 사업은 이런 제로섬의 딜이 메인이 되는 사업이 아니었으면 한다.
특히 없는 사람, 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딜을 해야 하는 사업은 절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Positive Sum을 이끌 수 있는 사업만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난 그렇게 순진하지도 않고, 휴머니스트도 아니다.
다만 늘 관계가 다치는 사업을 통해서는 결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천성을 타고난 이상
매일 이런 식의 딜을 해야 하는 사업들은 피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내 사업의 조건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고 있지만,
인더스트리가 어떤 쪽이던 간에 내 행복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업을 하고 싶은 욕심은 돈을 벌기 위함도,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다.
그저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일을 목숨걸고 해보고 싶은 욕심 뿐이다.
돈과 명예는 따라오는 부산물일뿐 결코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주객 전도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 때 난 비로소 행복해 질 수 있다.